마파도 할매는 다섯 영광 동백마을 할매는 열 둘

2023. 6. 3. 12:42여행

마파도 할매는 다섯 동백마을 할매는 열 둘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다. 옛날 영화를 만나러 갔던 길이었다. 근데 거기서 새 영화를 만났다. 이태 전 술렁였던 마을은 다시 긴박하게 돌아갔다. 낯선 사람들이 낯선 장비를 들고 움직였다. 원래는 섬이 아닌 작은 해변마을이 또 다시 섬이 됐다. 세트 건물이 추가로 세 개나 더 들어섰다.세상에 그런 섬은 없다. <마파도>다. 지도에도 없고, 누군가가 마음 속에 꿈꾸는 이상향으로서의 섬에도 그런 곳은 없다. 마파도는 이어도가 아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섬보다 재미있는 곳인 것만은 분명하다.이 나라 영화사에서 할매들이 처음으로 중심에 섰던 섬이기도 하다. 그 할매들 엽기, 호러, 그로테스크하면서 또한 인정 많다. 딱히 어울리진 않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 할매들 덕에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몇몇 비평가를 기분 좋게 비웃었다. 그 할매들 카리스마 지금 생각해도 멋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난 아니게 웃겼다.영화라는 게 그렇다. 세상에 키에슬롭스키 같은 감독만 있다면 장담하건대 영화는 장르 예술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는 대중과 함께 서 있을 때 영화다. 혼자 자기 잘났다고 우기다간 쪽박차기 십상이다. 영화는 소설이 아니다. 집단 창작의 산물이다. 엄청난 돈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관객과 같이 호흡할까를 고민하는 게 영화다. 달랑 연필 하나만 가지면 되는 게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파도>는 좋은 영화다. 그 영화 솔직히 딱 까놓고 웃자고 만든 영화다. 많이 웃겼다. 그럼 좋은 영화다.

 

▲ 마파도 할매는 다섯(왼쪽 영화 스틸 사진), 동백마을 할매는 열 둘이다. 동백마을 할매들도마파도 할매들처럼 입이 걸다. 인정도 많다. 2005년 마파도를 찾았을 때 만난 동백마을 할매들.ⓒ 전라도닷컴

<마파도2> 촬영에 온 동네 떠들썩
모르고 갔다. 사실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먼발치서 한 떼의 사람들이 북적이는 모습을 볼 때만 해도 할매들의 내공을 먼저 떠올렸다. 그러니까 극장에서 필름이 내려간 지 2년이 가까운데 아직 촬영장소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 들다니, 뭐 이런 놀라움이었다. 속으로 그랬다. 역시 그 다섯 할매들은 대단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약간의 교체가 있었지만 진짜 그 다섯 할매(사실 이번에는 여섯이다)들이 다시 와 있었다. 그 마을에서 영화가 촬영되고 있었다. 새롭게 찍히는 영화의 제목은 <마파도2>다. 기분이 묘했다. 뚜껑이 아직 열리지 않았으니 평가하긴 그렇다. 하지만 그 할매들의 내공을 직접 눈에 담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건 근사한 행운이다.

스태프에게 살짝 물었다. 김수미 할매만 빼고는 다 왔단다. 우리의 이문식은 전편과 다름없이 여전히 구박을 당한다. 여운계 할매에게 된통 깨지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문을 박차고 나온다.
이쯤 되면 그 마을을 영화의 마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다. 유독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여러 영화들에 단골로 나오는 장소들이 있다. 낙안읍성은 어림 잡아도 열 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두 편의 영화 거의 전부를 한 곳에서 찍었던 예는 없다. 물론 거대 세트장은 열외다. 더욱이 속편의 제작은 전편의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흥행 성공에 기인한다.

 

▲ 동백마을에서 고기를 잡는 사람은 이제 없다. <마파도2> 촬영을 위해 마당에 생선을 말린다.ⓒ 김태성 기자
솔직히 그 마을, 영화 아니더라도 찾아오는 사람 많다.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칠산바다의 시작점이 되는 해변, 백수 해안도로를 끼고 있는 마을이다. 사실 <마파도>가 그곳에서 찍혔던 이유도 아름다운 해변 때문이었다. 영화의 무대는 섬이다. 그러나 섬에서 영화를 찍는 것만큼 힘든 일이 또 없다. 수많은 엑스트라 공수와 장비들, 영화 한 편 만들려면 최소 50명 이상의 집단이 움직인다. 섬은 하루 세 끼니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골치 아프다. 동백마을은 섬인 척 위장하고 영화를 찍기에 맞춤형 공간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백수 해안도로에서 절벽 같은 길을 타고 내려가면 곧바로 마을이 있다. 불과 20여 채의 집들이 모여있는 마을은 오밀조밀 아늑해 보인다. 어느 집에서나 문을 열면 비경의 바다와 바로 마주할 수 있다. 마을로 들어가서 돌아보면 그곳은 정말로 고립의 섬처럼 보인다.

신던 고무신, 쓰던 밥그릇 호미 낫이 영화 속 소품으로
그 마을 진짜 아름답다. 이름처럼 봄이면 해변을 옆에 두고 동백이 흐드러지게 핀다. 그리고 영화처럼 할매들의 땅이다. 평균 나이가 70이 넘는다. 그나마도 최근 나이 사십 줄인 젊은 사람 한 명이 수혈돼 평균치를 많이 내려준 결과다. 할매 열 둘, 할배가 둘, 젊은 남자 한 명이 마을의 구성원이다. <마파도>가 찍히던 무렵만 해도 할매 한 명이 더 있었지만 올 봄 다른 세상으로 갔다. 영화와 마을의 운명이 절묘하게 일치한다.

무엇보다 영화 마파도의 할매들처럼 동백마을 할매들도 입이 걸다. 인정도 많다. 객을 선선히 집안으로 받아들여 삶은 옥수수를 내놓는다. 사실 시골마을 어디라도 만날 수 있는 인심이기는 하다. 그러나 동백마을의 사정을 알면 그 인심이 특별해진다.

이태 전 영화가 찍힐 때만 해도 몰랐다. 촌사람 눈이 호강한다 싶었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배우들이 동네에서 몇 달을 죽치고 살았다. 심심하던 할매들 정말로 신이 났다. 영화가 개봉됐을 때는 영화표도 나눠줬다. 생전 처음 극장이란 곳에도 가봤다. 법성포에서 단체 상영도 했다.

 

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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