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26. 12:36ㆍ사찰순례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1208년(고려 희종 4) 만연(萬淵)이 창건하였다.
창건 설화에 따르면, 만연이 광주 무등산 원효사(元曉寺)에서 수도를 마치고 송광사로 돌아가는 길에 현재의 절 부근에서 잠시 쉬다 잠이 들었다. 꿈에 십륙나한이 석가모니불을 모시려고 불사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꿈에서 깨어 주위를 돌아보니, 눈이 내려 많이 쌓여 있었으나 자신이 누웠던 자리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이를 신비롭게 여겨 이곳에 토굴을 짓고 수도하다가 절을 세웠다고 한다.
또 다른 설화를 보면, 옛날에는 만연산을 나한산(羅漢山)이라 하였다. 이곳에는 암자가 많았는데, 그 가운데 한 암자에 만연이라는 예쁜 상좌가 있었다. 한 승려가 만연을 사모하여 숲으로 끌고가 겁탈하였다. 이에 만연은 목숨을 끊었다. 그 날 승려의 꿈에 만연이 나타나서 '나는 나주목사의 아들로 태어날 것이며, 너는 평생 죄를 면치 못할 것이니 나한산을 떠나라'고 하였다. 승려가 나주목사를 찾아가니 정말 아이가 태어나 있었고 아이의 부모도 똑같이 만연의 꿈을 꾸었다고 하였다. 곧 꿈에 사미승이 나타나 자신은 화순 나한산에서 공부하던 몸이나 억울하게 죽어서 환생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나주목사는 아들 만연을 위해 만연사라는 절을 지었으며, 나한산이라는 명칭도 만연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창건 이후 한때는, 대웅전과 시왕전·나한전 등의 전각을 비롯하여 승당·선당·동상실·서상실·동별실·서별실 등 많은 건물이 있었고, 누각도 설루·사천왕문·삼청각·사리각 등이 있는 큰 사찰이었다. 이 중 사리각은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의 사리를 모셔 둔 건물이었다고 한다. 산내 암자도 학암당·침계당·동림암·연혈암 등 4개나 되었다. 《창의일지(倡義日誌)》에 따르면, 병자호란 때는 군사들에게 부식과 종이를 대주던 사찰이었다.
1793년(정조 17) 9월 전각 일부가 불에 탔는데, 이때 고려 때부터 전해오던 진언집 판각이 불에 탔다. 1794년(정조 18) 경관(慶冠)이 중건하였다. 구한말에는 명창(名唱)들이 수학하던 곳으로 이름났다. 당시 국창(國唱)으로 불리던 이동백과 이날치가 이곳에서 창을 공부하였고, 정광수와 임방울 등의 명창들도 이곳에서 공부하였다. 6·25전쟁 때 모든 건물이 불에 타 없어졌고, 1978년 철안(澈眼)이 중창한 뒤 불사를 계속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는 비구 전법도량이며, 산내 암자로 선정암과 성주암이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나한전·명부전·한산전·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안에는 목조삼존불상과 산신상을 비롯하여 칠성탱화·산신탱화·천룡탱화 등의 탱화와 동종이 있다. 유물로는 1783년(정조 7) 3월 영산회상도로 제작되었다는 괘불이 유명하다. 비현(丕賢)이 쾌윤(快允)·도옥(道玉)과 함께 만든 것으로, 길이 760cm, 너비 586cm의 대형 불화이다. 삼베천의 일부와 가사를 붉은 색으로 채색하고 석가모니불의 영산회상 장면을 압축하여 묘사하였다. 이밖에 경내에 전라남도 보호수로 지정된 젓나무가 있다. 둘레 3.5m, 높이 29m인 이 나무는 조계산 수선사 주지로 있던 진각국사 혜심(慧諶: 1178∼1234)이 심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만연사 [萬淵寺] (두산백과)